“여행갈래?”
이 네 글자가 참 별거 아닌 말처럼 보이지만, 듣는 순간 심장이 살짝 뜨거워진다. 무슨 이유에서든. 도망치고 싶어서든, 누군가랑 가까워지고 싶어서든, 그저 그냥 일상이 너무 뻔해서든. 그 말은 단순히 어딜 가자는 말이 아니고, 지금 이 순간을 벗어나보자는 제안 같거든.
지금 어디냐고? 그냥, 언제나처럼 반복되는 하루 속이지. 눈뜨자마자 휴대폰부터 보고, 출근길엔 무표정한 사람들 사이로 엉겨서 지하철 타고, 점심 먹고 잠깐 한숨 돌렸다가, 다시 모니터 앞에 앉아 숫자 보고, 문자 확인하고, 집에 돌아와선 티비 켜놓고 멍때리다가 또 잠. 내일도 똑같겠지. 그래서 그런가, 누가 툭하고 “여행갈래?” 하면 이상하게 마음이 먼저 반응해.
어디든 좋아. 꼭 멀리 안 가도 돼. 차 타고 한 시간만 나가도, 바람이 다르고, 공기가 다르고, 사람들 표정도 조금씩 다르거든. 도심을 벗어난 시골 마을, 골목길 따라 걷다 보면 옛날 간판이 달린 슈퍼도 있고, 괜히 문 앞에 고양이 한 마리 누워 있고. 그런 풍경만 봐도 마음이 말랑해져. 그게 여행이지, 뭐 대단한 무슨 계획이 있어야만 되는 건 아니니까.
근데 사실 나 여행 좋아하면서도, 가기 전까지는 백 번 고민하는 스타일이야. 뭘 챙겨야 하지, 숙소는 괜찮을까, 날씨는 어떻지, 일정은 어떻게 짜지… 이런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해지거든. 근데 막상 떠나잖아? 그 순간부터는 이상하게도, 다 별거 아닌 게 돼버려. 비가 와도 낭만이고, 길을 헤매도 추억이고, 계획이 틀어져도 그냥 웃음이야.
가끔은 그냥, 터미널에서 아무 버스나 타보고 싶을 때도 있어. 표 끊고, 그 도시 이름조차 모르는 어딘가로 가서, 처음 보는 간판, 처음 맡는 음식 냄새, 처음 걷는 길 위에서 나를 다시 만나고 싶어. 그러다 보면 어쩌면, 지금의 내가 아닌, 원래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조금은 떠오를지도 몰라. 바쁘고 복잡한 일상에 가려져서 까먹고 있던 나 자신.
또, 여행이라는 건 사람을 되게 솔직하게 만들어. 함께 걷고, 함께 먹고, 같은 숙소에서 눈뜨다 보면,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 보여. 연인 사이도, 친구 사이도 마찬가지야. 그래서 여행 가자고 말하는 건, ‘조금 더 너를 알고 싶어’라는 고백일 수도 있어. 나랑 하루 종일 붙어 있어도 괜찮겠냐는, 묘한 도전 같기도 하고.
여행에서 가장 좋은 건, 돌아오는 순간. 이상하지? 그렇게 떠나고 싶어 했는데, 돌아오는 길에 보면 늘 “그래도 집이 최고”라는 말이 절로 나와. 하지만, 그건 그냥 익숙함에 대한 안도감이지. 마음 한켠엔 또 언제 떠나고 싶을지 모른다는 걸 우리는 잘 알아. 그건 중독 같아. 한 번 떠난 사람은, 다시 또 떠나게 돼. 그 자유를 맛봤으니까.
그러니까,
지금 누군가 옆에서 “여행갈래?” 하고 묻는다면,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대답해.
“응, 가자.”
정말 필요한 건, 멋진 호텔도, 완벽한 계획도 아니고
그저 떠나고 싶은 마음 하나, 그리고 그 마음에 솔직해지는 용기 하나면 충분하니까.